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교회(Thomaskirche in Leipzig)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는 니콜라이교회(Nikolaikirche)와 함께 Leipzig시의 대형교회 중 하나이며 Johann Sebastian Bach가 봉직한 교회로 그리고 성 토마스 합창단(소년 합창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교회의 역사
1212년에서 1222년 사이에 옛 Marktkirche는 아우구스티누스 참사회원(Augustiner- Chorherren,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규범에 따른 삶을 사는 주교좌성당의 참사회원의 동맹)의 토마스수도원(Thomaskloster) 교회(Stiftkirche)로 개조되었다. 라이프치히 소년합창단(Thomanerchor)는 이미 1212년 설립되어 독일의 옛 소년합창단들 중 하나였다.
Leipzig는 15세기 말 광산에서 은의 발견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그로인해 옛 교회건물을 1482년 철거하고 오늘날까지 보존된 새 건물을 지어 1496년 Thilo von Trotha주교에 의해 봉헌되었다. 이후 몇 백년간 부분적으로 건물을 수리하고 개조하였다. 그 중 가장 의미있는 개조는 68m 탑의 건축이다.
1539년 오순절에 개혁가 Martin Luther가 설교하였다. 교회의 외형은 19세기의 수리와 개조에 의해 각인되었다. 1869년 교회는 시의 소유물로 자치권이 시로 넘어간 후 건물의 전면에 대한 역사적인 개조를 거의 30년 동안 실행하였다. 네오고딕양식의 외관은 Constantin Lipsius의 디자인에 의해 실행되었다. 반면 동시에 모든 고딕 및 르네상스양식의 외형의 요소들은 철거되었다. 탑엔 탑 관리인의 숙소가 있어 1533년부터 1917년까지 살았다.
1943년 12월 4일 Leipzig의 공습으로 거의 모든 건축물들이 해를 입었다. 공습에 의해 교회건축물의 대부분이 파손되었다. 그 결과 전쟁 후 재건축 시 연이은 전면의 개축이 필요하였다.
1950년 바흐의 해에 즈음하여 이곳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이었던 바흐의 유골은 파손된 Johannis교회로부터 운송되어 이곳 토마스 교회에 안장하였다.
세 개의 랑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총길이 76 m이고 중랑의 길이는 50 m, 넓이는 25 m 그리고 높이는 18 m이다. 천장은 이례적으로 63°의 경사가 있어 독일의 경사진 합각머리천장 중 하나이다.
바흐의 묘
토마스교회 내에 1950년 이래로 Johann Sebastian Bach의 유골이 안장되어있다. 1750년 7월 28일 그의 사후 Johannis교회의 양로원 공동묘지 매장되어있었다. 19세기에 들어 공공의 Bach작품의 음악적관심이 바흐무덤의 정확한 위치와 그의 유골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럼으로 1894년 해부학교수인 Wilhelm His에게 Bach의 관에 있는 유골이 바흐의 것인가를 판단하기를 위임하였다. 그는 1894년 10월 22일 Johannis교회의 참나무 관에서 취한 고인의 유골이 Bach의 유골임을 판단하였다. 1900넌 7월 16일 유골을 다시 Johannis교회 지하 석관에 매장하였다.
바흐의 무덤과 동상
1943년 12월 4일 Leipzig의 폭격 시 Johannis교회는 파손되었다. 바흐의 유골이 안장된 석관은 무사하였다. 새로운 무덤의 재생과 장소에 대한 토론 후 성스러운 공간이며 교회의 가장 높은 곳인 합창구역에 1949년 안장하기로 결정하였다. 1949년 7월 28일 토마스교회로 인도되었고 우선 북쪽 성구실에 안치하였다. 유골은 그곳에서 관 뚜껑이 1949년 8월 13일 완성될 때 까지 교인들에 의해 밤낮으로 지켜졌다. Leipzig의 건축가 Kunz Nierade의 디자인에 의한 합창구역에 놓인 새로운 무덤은 1950년 7월 28일, 바흐 서거 200년 주년에 봉헌되었다. 1961년부터 1964년 까지 연이은 토마스교회의 내부공사 도중 1961년 무덤은 1950년 합창구역으로 이전하였다.
오르간들
토마스교회의 오르간역사는 14세기로 돌아간다. 1489년 소형오르간이 문서상으로 언급되었다. 1511년 Blasius Lehmann에 의해 서쪽 난간에 설치되었고 이 오르간은 1601년 Johann Lange에 의해 손 건반 3단에 25개 음색으로 확장되었다. 1619년 오르간의 확장 및 수리작업이 Josias Ibach에 의해 이루어졌다. 1721/1722년 Johann Scheibe와 1772/1773년 Johann Gottlieb Mauer에 의해 수리작업이 진행되었다. 1639년에 제비집 오르간이 새로운 난간에 제작되었지만 1740년 옮겨졌다. Bach의 마태수난곡(Mattäuspassion) 연주는 1736년 두 오르간이 사용되었다. 주 오르간에서 1789년 5월 12일 Mozart가 연주하였다. 이 오르간은 1885년 Sauer의 오르간에 의해 대치되었다.
당시의 Schuke 오르간
공기압력식 액션의 로만틱 음색배치의 Sauer오르간으로 바로크의 작품을 제한적으로 연주해야 했기에 1967년 Alexander Schuke사는 기계식 액션의 손 건반 3단에 47개 음색을 갖는 오르간을 제작하였다. 이 오르간을 비대칭의 L자형의 평면으로 설계되었다. 이 오르간의 프로스펙트는 현대적이고 단순하게 디자인하였다. 이 Schuke오르간은 1999년 Woehl사의 새 오르간으로 대체되었다.
Sauer 오르간
토마스교회의 합창석인 대형 서쪽난간에 두 대의 옛 대형오르간들이 위치한다. 로마틱오르간은 1885-1889년 Wilhelm Sauer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오르간은 처음엔 손 건반 3단과 발 건반에 63개 음색을 갖고 있었다. 1908년 Karl Straube의 제안에 의해 88개 음색으로 확장되었다. 건반 및 스톱액션은 전기-공기압력식으로 작동하였다. Sauer 오르간은 Max Reger 작품의 연주에 적합하다. 2005년까지 이 오르간은 오르간제작사 Christian Scheffler에 의해 수리되었고 1908년의 원래상태로 돌아갔다.
Woehl오르간
오르간제작사 Gerald Woehl사는 2000년 Bach 창문 반대편 북쪽 난간에 Bach오르간이라고 하는 오르간을 제작하였다. 이 오르간은 Bach작품의 재생장치가 있다.
오르간의 외형은 바로크의 프로스펙트의 요소를 취했다. Woehl사는 프로스펙트를 토마스교회의 실내공간과 새 오르간의 4단 건반에 적합하도록 추가적인 Oberwerk로 장식하였다.
Sauer 오르간
바흐 오르간(Woehl)
중앙으로 집중되고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탑은 바로크오르간으로서 오르간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 외에 많은 세부적인 것들, 케이스의 프레임측면, 케이스의 진동, 오르간중앙에서의 Bach 표장(상징물), 연주대 위 박공 그리고 두 대의 현대적인 Zimbelstern을 장착하였다.
Woehl오르간은 손 건반 4단과 발 건반에 61개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 연주장치는 Brustwerk의 중앙에 위치한다. 이 오르간의 소리는 18세기 중부독일의 오르간소리를 모방하였다. 음색배치를 위한 기본은 1697-1707년 Eisenach의 Georgen교회의 Stertzing오르간을 위한 Bach의 입안(초안)에 두었다. 토마스교회의 오르간은 효과음색으로 두 개의 Zimbelstern과 종소리(Glockenspiel) 그리고 새소리(Vorgelschrei)를 사용할 수 있다. 건반 및 스톱액션은 기계식액션이다. 바람공급장치는 2층의 연단 좌(Manualwerk)측과 우측(Pedalwerk)에 설치하였다. 그들은 각각 쐐기형 풀무, 모터, 바람저장소로 이루어졌다. 하나의 레버를 이용하여 전체 음색을 반음 높이고(Chorton) 낮게(Kammerton)할 수 있다. 조율법은 Neidhardt이고 Bach시대 Leipzig 오르간들의 일반적인 음 높이에 해당하는 a1 = 465 Hz(Chorton) 이거나 바로크시대 악기들과의 협연에 적합한 a1 = 415 Hz(낮은 Kammerton)의 음 높이를 갖고 있다.